
“이것을 보고 자랐겠군.” 거대한 예수상의 발치에 도달한 기예르모가 말했다.
크리스가 기예르모의 곁으로 걸어왔다. 확실히 그랬지. 크리스는 생각했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예수상이 있는 곳에 오르기에 그는 낮은 곳에서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대신 그는 기진해질 때면 고개를 들었다. 흐리고 번개가 치는 날이더라도 눈썹뼈에 손날로 차양을 치면 이것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크리스는 마치 진통제를 삼키는 것처럼 등 돌린 석상을 시선으로 삼키곤 했다. 그러지 않으면 지독한 피로에 잡아먹히기라도 할 것마냥….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상의 얼굴은 바다를 향하고 있다. 그는 눈이 닿는 부촌만을 굽어살핀다고 누군가는 비아냥거렸다. 틀렸다. 부유한 자들이 예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그 등 뒤편의 고통 역시 함께 보아야 하리라. 석상의 등 편, 이파네마 해변의 반대편에는 거대한 빈민가—한 번 들어오면 다시 나가기 어려운 수직의 미로, 파벨라가 있으므로.
크리스는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이곳이 크리스의 고향이며 그가 나고 자라 적대했던 곳이기에. 언덕과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느라 팽팽해지던 허벅지, 한계까지 압축한 용수철처럼 불거진 핏줄과, 오더가 떨어지면 곧장 튀어 나갈 준비를 하던 시절을 그는 기억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크리스는 저 아래에 관광지로 탈바꿈한 고향의 모습을 발견한다.
색바랜 벽돌과 녹슨 슬레이트 지붕, 골목마다 축 늘어져 마치 파벨라가 거대한 거미줄에 붙잡힌 것처럼 보이게 만들던 전선들은 이제 없다. 대신 그곳에는 밝은 페인트가 발랄한 무늬를 이루며 벽을 덮었거나, 어업인과 청년과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동석涷石의 조각상이 대낮의 볕에 순백색으로 물들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가 대답했다.
더 깊게 보기 위해 눈가에 손으로 그늘을 만들던 크리스는 불현듯 익숙한 음률이 귓가에 맴도는 것을 알아차렸다. 석상 속에 위치한 작은 예배당에서 흐르는 성가였다. 내가 너를 회복시키리라… 그리고 너를 내게로 이끌고 새 옷을 입히리라……. 기도문에 음을 붙인 형태의 포르투갈어가 부드럽게 울리며 열린 문을 통해 퍼져 나오고 있었다.
크리스는 친숙한 음정을 따라 최초로 이 언덕에 발을 디뎠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머니가 불온한 사고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오른 언덕 위에는 숨찬 호흡을 압도할 풍경이 있었고, 머리 뒤에서 바다를 향해 부는 바람이 있었고, 알아들을 수 있는 나지막한 성가가 들렸다. 새빨간 노을이 마지막 숨을 쥐어짜 모든 것을 색칠하던 순간과, 부친이 그 순간 이후 다시는 보여주지 않았던 쓸쓸한 얼굴까지도. 그의 아버지는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단지 크리스는 그의 목 아래까지 차올라 있던 말을 느낄 수 있었을 뿐이다. 당신도 힘이 들 때면 이 석상을 보았을까? 다른 누군가에게 터놓는 대신?
기예르모는 해발 칠백 미터의 언덕 꼭대기에 잠시 멈춰 서 크리스의 정적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절벽을 타고 오르는 소금 바람에 이 봉우리를 담아 둔 듯 반구형으로 둘러싼 사방의 산과 풀이 물결쳤다. 고여있던 석상의 그림자가 비스듬히 흘러내렸고, …볕을 쬐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내려가자.” 기예르모가 말했다.
노래가 느린 걸음처럼 둘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은 바다를 향해 하산한다. 오직 휴양을 목적으로 한 아주 오랜만의 여행이기에 여행지를 고르며 크리스는 그가 살며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추천했다. 세계 3대 미항이라 불리는 이곳을, 모니터 화면을 통해 에메랄드빛이 번진 수평선을 보았을 때 기예르모는 사진으로부터 오는 평화가 피부를 약하게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이 기예르모는 이 여행지를 승낙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이 가져보지 않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기 마련이므로.
옷을 갈아입고 도착한 모래사장에는, 사람이 몰리는 구역을 살짝 비껴난 야자수 아래에 둘을 위한 썬 베드가 준비되어 있었다. 크리스가 하늘색 줄무늬의 천에 걸터앉아 아이스박스를 여는 동안 음료수병에 빠르게 물기가 맺혔다. 손짓 한 번이면 닦아낼 수 있는 물기다. 여기에는 옷을 쥐어짜야 하는 폭풍도,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소용돌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륙에서 태어난 기예르모에게 바다란 평화로운 단어였던 적이 없다. 그가 최초로 바다를 접한 것은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듯 입대해 수면 위와 아래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으니까. 다음으로는 대적자를 굽어보던 인어 여왕의 빛나는 눈 아래에서였으며, (눈높이가 아마 저 예수상이 있는 위치 정도는 되었을 테다) 그다음으로는 산산조각난 육신이 차가운 파도에 쓸리던 때였다. 그 물결과, 불완전한 몸뚱이를 해변가로 밀어주던 포말과, 물에 굳어 단단한 진흙을 파먹으며 황급히 몸을 기우던 푸른 선충의 꿈틀거림이 그를 지배하는 바다의 감각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바다가 이 앞에 있다.
기예르모는 느리게 일어나, 슬리퍼를 벗어둔 채 맨발로 걸어나가 조수에 발을 담갔다. 햇볕에 따듯하게 데워진 물결이 발잔등을 간지럽혔다. 그러니까… 바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백사장과 오감을 자극하는 해안선, 잘게 부서져 발가락 사이로 밀려드는 포말과, 발꿈치 아래 비벼지는 부드러운 모래알 진흙의 감각 따위라니. 이 모든 게 너무도 안온하기 짝이 없어서… 살결을 어루만지는 투명한 간지러움이 이미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조용하고 편안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기예르모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자신이 세 번째 삶을 강제로 주었고, 또 자유로이 놓아주었고, 그러나 다시 돌아와— 이제 기예르모의 곁에서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한 한 사람이, 기예르모가 이미 가진 평화가 그곳에 있었고,
크리스는 썬베드에 앉아 기예르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친 시선이 숱하게 보아온 관능적인 초점과 다르다는 사실을 크리스는 알았다. 다소 미묘한… 크리스는 처음 보는 기예르모의 표정에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기예르모의 목구멍 아래에 들어찬 말이 올라와 세상에 내뱉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가 들어야만 하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에게서 나오는 음성은 없다.
다만 고요하게, 오래된 암묵지 위에서.
언어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은 유착된 관습 사이에서.
육지를 향해 부는 바람과 사각거리는 파도 소리 사이에서.
크리스는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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