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리시리섬으로 향했을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본가에서 쫓겨나 계절이 여러 번 지나도록 홋카이도의 별장에 갇혀 지내야 했다. 압박이 심했을 때는 몇 달이나 갇혀 문틈에 앉은 작은 새나 고양이를 지켜보는 게 고작이었다. 도쿄에서 온 아가씨가 방 안에 갇혀 엄격한 신부 수업을 받거나, 고리타분한 별장의 주인이자 사촌 되는 이과 식사마다 매번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하인들도 측은지심을 갖기 마련이었다. 오지랖이 넓은 하인은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몰래 별장 밖의 세상을 안내해 주곤 했다. 처음 별장 밖에 발을 내디뎠을 때 보았던 것은, 리시리산―당시에는 섬이 아니라 산만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이었다.
계절에 따라 색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리시리섬을 바라보는 게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창 너머로 눈이 푹푹 쌓였을 때는 부러 빨래터의 하인들을 따듯한 실내로 데려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리시리산은 무엇인지, 리시리산이 있는 섬은 어떤 곳인지 같은 것들을. 그러다 한 하인이 말했다. 리시리섬에서 식자재를 조달하러 주기적으로 별장에 방문하는 푸른 머리의 일꾼이 있다고. 짐을 이고, 배를 타, 수레를 끌어 별장에 온 지가 벌써 몇 년이나 반복되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저런 산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같은 지극히 아가씨다운 대답을 태연히 내놓았지만, 하인들이 빨랫감을 정리하는 동안 내 심장은 은밀하게 뛰고 있었다.
눈발이 작아지기 시작할 무렵 일꾼이 도착했다. 직접 말을 걸어볼 수는 없었기에 문틈 새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적지 않은 하인들은 그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일꾼을 렌이라고 불렀다.
렌. 일렁이는 파도처럼 거칠기도 했고, 사뭇 다정하게 감싸주는 듯한 이름이었다. 어쩌다 그런 이름을 가졌을까, 무슨 이야기를 하기에 그리 웃을까, 별장까지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을까, 몇 살일까, 결혼은 했을까, 그리고… 나를 알고는 있을까? 하늘에 흩날리는 눈발만큼의 생각이 렌을 향한 질문으로 귀결되는 와중에, 눈이 마주쳤다. 분명 눈의 색깔이었다. 눈의 은빛이다. 일순간 내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아버릴까 두려워 바로 문 뒤로 숨었지만 분명 눈이 마주쳤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렌이 떠난 후 남은 하인들에게 그 애에 관한 것을 알아내려 했었다. 처음에는 심심찮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들도 일이 바빠지니 걱정과 의아함, 약간의 싫증을 덧붙인 대답을 건네고 말았다.
‘아가씨가 그 애를 알아서 뭐 하시려고요? 귀하신 분께서 굳이…’
그래서 나는 렌이 오는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아니 오지도 않았기에. 처음에는 문틈을 통해 뒷모습만을 좇을 뿐이었다면, 다음에는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고, 그다음에는 마당에 나와 부러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기다림을 세어가며 흐르듯 계절을 보냈다.
꽃이 피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 어느새 소나기가 내리고 태풍이 오기도 했다. 비가 멈춘다는 것은 곧 모두가 기다린 명절이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렌을 볼 수 없었다. 분명 명절의 직전과 직후에는 고기는 물론이고 생선, 야채가 많이 필요할 텐데. 그런 추리를 하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철썩거리는 소리를 내던 바다는 어느새 고요해져 있었다. 배를 띄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축제 준비로 여념이 없는 별장은 밤이 되어도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모인 곳은 빛과 소리가 가득했으나, 내가 있는 곳은 어둡고 적막했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모아둔 짐을 고운 천에 감싼 후 낡은 망토를 둘러 얼굴을 가린 채로 별장을 몰래 빠져나왔다. 작은 나룻배들이 정박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땀을 닦고 있는 사공이 있었다. 무어라 불평을 하기도 전에 동전을 쥐여주니 한숨을 쉬며 배를 끌어왔다. 흔들거리는 나룻배에 앉으니 배가 잔잔한 파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바람을 맞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시리섬에 도착했다. 사공에게 인사를 한 후 보따리를 들고 잔디가 나 있지 않은 땅을 따라 걸었다. 겉보기에는 끝없이 이어진 길이었지만, 뜻 모를 확신이 내 안에 존재했다. 끝에는 분명 렌이 존재할 것이라고. 신발이 불편했지만, 그 애에게 전해줄 것들을 생각하니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 허리끈과 장식은 분명 그 애에게 잘 어울릴 것이다. 축제를 온 사람들이 모두 렌을 보겠지. 기뻐했으면 좋겠다. 바람을 세어가는 동안 허전한 감각이 일순간 몸을 휘감았다. 망토가 날아간 것이다. 잡기 위해 손을 뻗으려고 하려던 찰나, 하늘로 달려가는 천은 이미 한 지점에서 우뚝 멈춰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망토를 잡은 인영이 보였다. 그 애, 렌이었다. 언덕 중턱에 앉아 있던 그는 나를 발견하자 달음박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차분하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유즈루 아가씨가 맞으십니까?”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별장이 아니라 왜 이곳에… 아, 그것보다. 입혀드릴까요?”
내게 보여주던 얼굴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예상한 모습도, 기분 나쁜 모습도 아니었다.
“아니야. 대신 이것 좀 들어줄래?”
보따리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두 손으로 주는 게 예의라고 배웠지만 알게 뭐람. 렌은 망토를 든 제 손과 빈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와 달리 참 예의가 바른 애였다. 그래서 가벼운 척 덧붙였다.
“편하게 받아. 난 손님이잖아.”
그 말에 한참을 고민한 렌은 한 손으로 보따리의 손잡이를 잡았다. 내 손 위에 겹쳐서. 나는 손을 빼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무언가 질문을 하려 했는지 다문 입이 파도처럼 출렁였으나 이내 침묵했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길을 걸어가니 어느새 오두막이 나왔다. 오두막은 작고 깔끔했다. 보따리에 든 물건이 렌을 위한 선물이라 하자 그 애는 믿지 못하는지 멀거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감사를 전하듯 고개를 숙인 렌은 정리를 하기 위해 잠시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바닥에 앉아 어둠에 물든 리시리섬을 눈에 담았다. 얼마 후 렌이 따듯한 차를 내오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가씨.”
“리시리섬도 축제를 연다고 들었어. 하지만. 렌은 성실해서 또 오두막에 틀어박혀 일만 할 거잖아. 그래서 왔어.”
“…저를 잘 알고 계시네요.”
“그, 그야. 시게미야 가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까. 하인들도 렌 이야기를 자주 하거든. 리시리섬에 혼자 있잖아.”
실수했다. 잘 알고 있다고 말해버리면 친분 없는 이들은 먼저 도망가기 마련이다. 친분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입장의 차이는 있지 않은가. 나는 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기에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애보다는 리시리섬에 관심이 있는 척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장 근처와는 달리 규칙도 배열도 없이 제멋대로 난 풀들, 그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벌레들, 이야기하듯 재잘거리는 들짐승의 소리까지. 한데 어우러져 아름답게 복작거리고 있었다.
“렌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는구나. 왜 별장에 오지 않는지 알 것 같아. 자유롭고, 언제든지 자연과 이야기할 수 있잖아. 부러울 지경이야.”
급하게 리시리섬의 이야기로 갈무리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렌은 천천히 다가오더니 망토를 내게 둘러주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약간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곤했나.
“밤이 늦었습니다. 아가씨.”
“알고 있어.”
“이렇게 어두우면 파도가 쳐도 안 보일 거예요. 돌아가기엔 위험해요.”
“하지만… 내가 여기 있는 걸 알면 렌은 엄청나게 혼날 텐데. 그래도 괜찮아?”
“들키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면 나 여기 있을래.”
렌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보따리를 잡았을 때보다 좀 더 세게, 감싸듯이 내 손을 쥐더니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부러진 나무 기둥이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둘이 앉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풀을 밟는 소리를 느끼며 물었다.
“있잖아.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렌은 대답해도 된다는 듯 나무 기둥에 나를 앉히고 바라보았다. 하늘에 점점이 박힌 구슬들을 눈에 담으며 물었다.
“하늘에 있는 저 아름다운 것들은 무엇이니?”
“별이에요. 유즈루 아가씨.”
“별? 이렇게 많은 것들이 모두?”
어느새 내 옆에 앉은 렌은 손을 뻗어 별을 하나하나 가리키기 시작했다.
“네, 아가씨. 저 많은 별은 헤어진 연인들을 불쌍히 여긴 신이 몇 년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다리예요. 멀리 있는 별은 혹여나 그 길을 상스럽게 이용하지 않도록 지키는 문지기의 별이고요. 문지기의 별 옆에 있는 작은 별은 문지기의 아이예요. 그 옆에 흩어진 별들은 길을 잃은 불쌍한 영혼입니다.”
별빛에 비춰 보이는 옆모습, 사락거리는 푸른 머리카락, 하늘을 향하는 단단한 손을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핑계를 내세워 렌과의 거리를 좁혔다. 따듯한 온기가 닿아왔다.
“며칠이 지나도 전부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이 있지만 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은 일꾼의 별이에요.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리지는 않지만, 새벽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저희를 비춰주는 별이지요. 7년마다 동경하고 있는 다른 별을 따라 혼인을 올린다고 해요.”
“별도 혼인을 홀릴 수 있어?”
“그럼요, 아가씨.”
그리고 렌은 별들의 결혼을 설명해 주려고 했었던 것 같다. 내 예상일 뿐이지 별로 정확하지는 않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렌과 별의 다리를 건너고 있었으니까. 이것 또한 정확하지는 않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오두막에서 렌의 팔을 베고 있었다. 아마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어깨를 베고 잠에 든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 때의 기억이 정말 겪었던 일인지 꿈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불확실함에 헤매어 잠에 들지 못하는 밤마다 렌을 위한 선물을 보관한 상자를 열어보곤 했다. 상자는 분명 비어 있었다. 별장의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이따금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했다.
저 수많은 별 중 가장 다정하고 빛나는 별 하나가 내게 자장가를 들려주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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