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ue

16. ID

collabo5450 2024. 6. 6. 14:07

 

 

 

  외딴 별장에는 파도가 모래알을 긁고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바람이 우거진 숲을 휘갈기는 손길과는 달랐다. 얕게 얼어붙은 호수의 파열음과도 같지 않았다. 주인 내외가 찾지 않으면 최소 인원만 남아 관리했기에 인간이 자행하는 일이라 여길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원래는 이런 소리가 나지 않았노라 하였으나 며칠 되지 않는 사이 일을 그만두어 알 수 없었다.

 

  별장은 계절에 따라 찾는 휴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저택이 되었다. 주인은 오래전 출가해 소식 하나 전하지 않던 매정한 도련님이었다. 얼굴 반쪽에 붕대를 매고 다리 하나를 절며 돌아온 이는 푸석한 피부에 퀭한 눈을 한 채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저택에서 익숙한 점을 발견했을 때면 인상을 찌푸리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지내던 도련님은 붕대를 풀 때쯤에 본 저택을 나와 이 별장으로 거취를 옮겼다. 별장에서 일하고자 자원하는 이들을 주인님이 손수 골랐다. 나 또한 손을 들었을 때 그분께서는 고민하는 듯 보였으나 허락했다. 도련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늙은이의 바람을 들어주신 것이다. 그렇게 도련님을 보필하고 별장의 관리를 맡는 총책임자가 되어 이 외딴 저택에 들어섰다.

 

  도련님은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으니, 산책 중에도 자주 멈추어 서서 숨을 돌렸다. 넓고 푹신한 침대 위에서는 잠들지 못하는 듯 오랜 시간을 뒤척거렸고 아침에 깨우러 갈 때면 좁은 일인용 소파에 구겨져서 선잠에 들었거나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가에 드리운 그늘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눈이 붉지 않은 날보다 붉은 날이 더 많았다. 주무실 때가 아니면 담배를 입에서 떼어놓질 못했다. 비누 향이 나던 도련님은 어느새 매캐하고 탁한 재의 향만 났다. 식사 또한 달라졌다.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탓에 그것에 주의하여 선호하던 핏물이 밴 스테이크를 준비했는데 핏물이 밴 고깃덩이를 본 날 도련님은 처음으로 지시를 내렸다. 다음 식사 때부터 모든 고기는 바짝 익혀지게 되었다.

 

  계절이 바뀌었을 때부터 나아지기 시작했다. 재떨이에 든 꽁초의 수가 줄었고 정원의 의자에 앉아 독서를 즐기기도 했다. 아침에 충혈된 눈과 인사를 나누는 일이 줄어들었고 침대에서 잠든 도련님을 깨우는 일은 늘었다. 혈색이 나아졌고 사용인과 짧은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우중충했던 저택이 변화에 따라 활기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도 오래 가지 않았다.

 

  아침부터 하늘이 어두웠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도련님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친 상처가 욱신거리는 모양이었다. 그간의 생활이 얼마나 험하였는지 옷을 챙겨주다 등에 커다란 화상 흉터가 있는 걸 보고 놀란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외에도 잃어버린 눈과 한쪽 다리의 상처가 쑤시는 모양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앓는 소리는 삼키고 있는 것이 안쓰러웠다. 약을 챙겨드리고 저 또한 내내 창만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인간의 기원이 신께 닿아 자연이 다른 행보를 보이진 않기 마련이다. 애석하게도 볕이 들 기색은 없고 빗줄기가 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겨우 다시 잠이 든 도련님을 두고 자리를 비웠다.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린 건 빛이 시야를 뒤덮고 이어 천지가 개벽하는 것처럼 큰 소리가 났을 때였다. 도련님이 걱정되어 방으로 향했지만, 침대는 싸늘히 식어있었다. 한바탕 저택에 소란이 일었다.

 

  도련님을 찾은 건 정원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은 몰골로 아직 꽃이 돋지 않은 장미 아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다. 걸을 때마다 짙은 물기가 자국을 남기고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기괴하게 들린다. 좁은 집안은 벼락이 칠 때마다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창백한 얼굴을 한 이는 느리게 흔들린다. 그때마다 우는 것처럼 끼익, 끼이익...... 노려보고 있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어딘가 어긋난 그 시선에 도련님을 부른다. 소리에 반응한 이를 보고 안도하게 된다. 무엇으로부터 인지 알 수 없으나 그를 데리고 돌아간다. 빗속에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건지 그날 이후로 며칠을 꼬박 앓아누웠다.

 

  근처 도시에서 미술품 경매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무기력하게 생활을 이어가는 도련님을 설득하여 경매장에 방문했다. 관심이 없어 보이던 도련님은 그림 한 점마다 나오는 설명을 흥미롭게 들었고 이윽고 마지막 그림을 낙찰받았다. 그것은 아름답지 않았고 사람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으나 도련님께서는 마음에 든 모양이라 만류할 수 없었다.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 도련님은 미술관에 들러 몇 점의 그림을 구입했다.

 

  저택 곳곳에 그림이 걸렸다. 그에 걸맞은 장식품이나 꽃이 주변을 채웠다. 미술관처럼 그림의 오른쪽 벽면에는 작품의 이름과 작가 그리고 설명이 붙은 안내 플레이트가 붙었다. 마치 저택 자체가 갤러리처럼 보였고 일이 끝난 사용인이 감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은 별장 1층 끝, 구석진 곳, 둥근 갤러리 홀에 전시되었다. 도련님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점차 늘렸고 방을 나올 때면 문을 잠갔다. 내게도 이곳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 이야기했고 홀을 청소할 때면 그림을 가려둔 채로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두꺼운 장막 너머에 가려진 것이 신경 쓰였으나 다시 생기를 되찾으신 것 같아 저것을 치우는 게 좋지 않겠냐는 물음은 하지 못했다.

 

  한 손님이 저택을 방문했다. 전에 편지를 전해달라 일렀을 때 적혀있던 성함과 같은 이였다. 무엇을 하는 자인지는 모르나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양새가 전에 일하던 곳과 연관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도련님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고 손님이 떠나간 후부터 추천서를 가지고 저택을 찾는 이가 늘었다. 신원이 모호한 이가 많아 거절하려 했으나 도련님은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라며 받아주었다. 그런 이들은 오래 일하지 않고 저택을 떠났다. 종종 야반도주라도 한 모양새로 짐이 남아있어 이상했으나 도련님은 신경 쓸 필요 없다 하였다. 찜찜한 마음이 도통 떨어져 나가질 않았다. 공통점이 있던 탓이다. 대부분이 신원이 불분명하고, 손님의 추천서를 가지고 이 저택에 방문했으며, 폭풍우가 칠 때 일을 그만두겠노라 말하거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이 떠난 날에는 갤러리 홀은 온통 물난리가 났다. 도련님은 언제나 앵무새 같은 무성의한 말을 내뱉었다. 비를 맞으며 그림을 감상하고 싶었네. 그래, 단지 그뿐이야. 말하는 이도, 듣는 자도 믿지 않는 변명이었다.

 

  경매장에서 보았던 그림을 다시 보게 된 건 그러한 일이 일상이 되어갈 참이었다. 창밖은 폭풍우가 치고 있었다.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으면 다급한 발걸음 하나가 다가온다. 시선을 돌리면 최근 들어온 신입 하나가 파리한 낯으로 숨을 고른다. 일을 그만두겠노라는 말이 나올 것이 뻔하다. 그러라 하는 답이 떨어질 새도 없이 축축한 걸음 하나가 뒤를 잇는다. 사용인은 비명도 못 지른 채로 얼어붙었다. 시선을 내리니 사용인의 걸음 또한 젖어있다. 케일럽. 부름에 시선을 든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 광기가 스며있다. , 도련님. 착잡한 마음을 숨기며 답한다. 대화 도중 미안하네. 그자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 미안하지만 잠시 나 좀 볼 수 있을까. 사용인이 고개를 내젓는다. 새된 목소리가 일을 그만둘 것이니 이제 무관계한 일이라느니 다 못 본 것으로 하겠다느니 횡설수설한다. 도련님은 말을 막으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리 묻는다. 내가 잡아먹을 것처럼 구는군. 잠시 대화만 나누자는 것인데⋯⋯. , 그렇다면. 케일럽이 함께 가면 자네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겠나? 어떤가, 케일럽. 바쁘지 않다면 시간 좀 내어주게. 시선이 느껴진다. 같이 가주길 바라는 처절한 애원과 같이 가자는 부드러운 압박. 답은 정해져 있다. 가겠습니다. 일이 바빠도 도련님의 청이니 당연하지요.

 

  젖지 않았음에도 젖어간다. 앞뒤로 물에 먹힌 자들이 있는 탓이다. 비가 올 때면 이쪽으로의 출입을 엄금하였으니 고요하고 한적하다. 스산하고 음산하기 짝이 없다.

 

  앞선 도련님이 갤러리 홀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잠그지 않고 사용인을 찾아온 모양이다. 들어서면 찰박,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온통 물난리가 났다. 전광에 어두컴컴한 홀에 빛이 든다. 창은 열려 있지 않다. 마지막 사용인까지 안에 들어서면 문이 닫힌다. 번갯불이 푸른 눈에 비쳐 기묘한 빛을 낸다. 애써 호흡한다. 비가 내릴 적이면 저택의 기온도 함께 내려가기 마련이지만 이곳은 어쩐지 폐부를 채우는 공기가 서릿발 같다.

 

  장막이 활짝, 열려 있다.

 

그것은 시야를 채우는 거대한 바다다. 물속을 그려낸 것인지 하늘과 바다의 맞닿은 점인지 경계를 그려낼 수 없다. 흰 포말은 온데간데없고 빛이 들지 않는 심해를 한 조각 잘라 박아 넣었다. 깊은 수면 속임에도 잔잔하지 않고 요동친다. 검은 물결이 요동칠 때마다 틀 너머로 소금기 어린 물을 뱉어낸다. 감싼 액자에 부딪힐 때면 바위에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갈무리를 할 때면 할퀴어 잡아채는 소리가 난다. 붓질을 잘못한 것처럼 한편에 허연 빛 같은 것이 빛을 밝힌다. 등대일까. 아니 저것은 등대가 아니다. 희게 빛나는 것과 눈이 맞는다. 눈?

 

  하하. 케일럽. 자네를 위한 게 아니야. 불쑥 시야에 들이차는 것은 도련님의 얼굴이다. 그림과 나를 가르는 벽처럼 선 이의 모습에 호흡이 얕게 트인다. 동시에 우악스러운 손길로 뒤에 선 이를 잡아챈다. 비명이 짧게 울린다. 어느새 그것을 빼간 도련님은 그림 앞에 던지듯 놓는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던 이가 쏟아지는 물에 바짝 얼어붙어 고개를 들면, ⋯⋯. 흐려진다.

이런. 자네를 위한 게 아니라니까.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이건 뭐 하는 짓이지?

  무엇이 말입니까?

다 알면서 시치미 떼지 마라.

  그대로 도망치게 둘 수 없어 케일럽의 힘을 빌렸을 뿐이지요.

그만둘 생각은 없나 보군.

  예. 아직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

  도와주실 테지요. 당신도, 케일럽도.

미련한 놈.

 

  의식을 차렸을 때는 내 방이었다. 물기라곤 남아있지 않은 모습에서 이 모든 것이 꿈이었노라 치부할 수 있었을 테지만, 분주하게 갤러리 홀을 청소하는 이들의 모습과 나를 보며 웃는 도련님의 모습에서 지난밤의 일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희미한 의식 속 뇌를 갉아먹듯 들리는 기이한 격랑과 대화를 나누는 도련님의 목소리까지도.

 

  실례합니다. 추천서를 가지고 왔는데요.

  추천받은 분과 추천서를 주신 분의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 이름은 라반이고, 추천서는 노아 님이요.

  예, 노아 님의 추천서가 맞군요. 오늘은 여독을 풀고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지요.

  ⋯⋯확인은 이게 끝인가요?

  예, 노아 님의 추천서니까요.

 

  아이리스 저택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드넓은 들을 채운 푸른색 아이리스가 바람에 몸을 뉘는 곳, 그곳에는 저택이 한 채 있다. 격랑이 일 때면 하늘을 가르는 섬광에 희게 물들어 꽃이 파도치는 곳. 외딴 바다에 파도가 친다. 절벽에 부딪히고 모래알을 할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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